4·3학살의 주범은 미국

“원인에는 관심이 없다. 나의 사명은 진압 뿐”
“I don’t care about the cause, my mission is to suppress only.” ( 1948. 6. 8. 브라운 대령, 군경토벌대 최고 지휘관)

제주4·3은 미국군사정부(미군정)시기인 1947년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38도선 이남의 통치는 미국군사정부에 의해 이루어졌기 때문에 당연히 미국의 일차적 책임이 있다. 그리고 1948년 8월 정부 재건후인 9일 만에 8월 24일 체결된 ‘한미잠정군사협정’에 의해 군사와 관련하여서는 미국이 직접 지휘하였기에 미국의 책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구체적인 사유는

첫째, 1947년 3.1절 집회에서 미군정 경찰의 발포로 인한 인명살상, 이에 항의하는 제주도민에 대한 무차별 연행 등 대탄압

둘째, 1948년 4월 3일 무장봉기 발발 이후 평화적 해결의 길을 거부하고 무력충돌의 격화와 대규모 희생을 낳을 수밖에 없는 강경진압 작전 지휘

셋째, 5.10 단독선거에서 제주도 2개 선거구 선거 무산 이후 제주지구 사령관으로 파견된 브라운 대령이 강경진압 작전 시행


넷째,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한국군에 대한 작전권을 갖고 있던 미 군사고문단이 1948년 가을 이후의 무차별 대량학살을 제어하기는커녕 초토화 작전에 직·간접으로 개입하여 학살을 부추겼다는 사실 등 제주4·3에 대해 미국이 법률적, 정치적으로 책임져야 한다.


특히 미군의 비밀문서에 의하면 미군의 군사 통제를 받는 한국군이 제주도민을 야만적으로 학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제제하지 않고 무기를 지속적으로 제공하였다.

제9연대는 모든 중산간 마을 주민들이 공공연하게 게릴라에게 도움과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는 가정 아래 마을 주민에 대한 집단학살계획을 채택했다. 1948년 12월까지 제9연대가 점령했던 기간 동안 섬 주민들에 대한 대부분의 살상이 발생했다.(제9연대 대략학살계획에 대해 기록한 미군 보고서. 1949. 4., 1)

주한미군사고문단장 로버츠(Roberts) 준장의 개인 서한 공한철 목록(문서군 RG 554, UD-UP109, 4번 상자) 1949년 1월 28일자 문서에는 친일부역자 출신의 “채병덕 장군에게 보내는 편지”가 존재한다. 

“지난 1월 26일, 공산주의자를 소탕(cleaning-up)하기 위한 대한민국 육군과 해군 명령서의 번역본을 받았으며, 이러한 목적을 위해 제주로 한 개의 대대를 이동하겠다는 계획을 전달받았다. 이 계획은 최고 수준의 사고(Excellent Top-Level Thinking)라 생각하며, 특히 고문단에 당신의 기동 계획과 전략을 상시적으로 공유한다는 점을 높이 사고 싶다.”